어제는 일본인 청년이 와서 일자리를 잃고 노숙생활을 한다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고향에 가려는데 교통비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침 인근의 목사님이 오셔서 그 청년을 알아보고는 같은 사정을 듣고 구제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돌아다니며 거짓말로 속이며 구제를 청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알면서도 속아주는 척 구제했습니다.
때로는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이 잘 하는 일입니다.
오늘은 요나서 2장입니다. 2절을 봅니다.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요나의 물고기 뱃속에서의 기도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거부하고 자기 길로 갈 때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막으시고 물고기에게 삼키게 하시고 그를 철저히 회개시키시는 것입니다.
요나는 고난을 인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분명 회개하며 부르짖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고난을 받으면 절박하고 절실하게 회개의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사명의 길을 가는 것은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사명을 거역하고 가는 길도 고난입니다.
같은 고난이라면 사명을 감당하면서 당하는 고난이 훨씬 가치있고 소망있는 것입니다.
어제는 교회에서 오후예배 시간에 "맨발의 전도자 최춘선"이라는 기독교 다튜멘터리를 보았습니다.
30년을 맨발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감동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누가 시키나, 누가 말리나, 사명은 각자의 것인 걸" 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명자는 누가 시켜서 그 일을 하는 것도, 누가 말린다고 그 일을 중단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기에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그런 믿음의 사명이 있습니까?
사랑과 행복을 담아서
2010.5.31.
노학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