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일/説教日 | 2010년04월11일/2010年04月11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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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説教者 | 노학희 목사/魯學熙 牧師 |
| 성경본문/聖書本文 | 요한일서 /Ⅰヨハネ2:7-11 |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속성도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신앙을 가진 우리도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사랑에 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에 관한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첫째, 사랑하는 것은 옛 계명이며 새 계명이라는 것입니다(7-8절)
사도 요한 당시의 신자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구약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으로,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라는 말이 구약시대에는 없었는데 신약시대에 주신 새 계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분명히 말합니다. 사랑하라는 계명은 이미 구약의 옛 계명에 존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율법에도 명시된 것들입니다. 레위기19:18에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라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인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으로 행하시는 분입니다(히13:9). 때때로 우리는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기에 징계도 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에 대하여 그렇게 하십니다(히12:5-13).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처럼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둘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눈이 멀어 어둡게 된다는 것입니다(9-11절)
8절을 보면 “어두움이 가고 참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빛으로 오신 것을 말합니다(마4:16; 요1:9). 세상은 미움과 증오, 다툼과 시기, 분열과 쟁투 등으로 가득 차서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의 어두움의 기세가 강해도 해도 빛 되신 예수님 앞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합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만약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빛, 즉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두운 가운데 행하고 눈이 멀어 갈 곳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눈이 멀었다는 것, 곧 영적 장님이 된다는 것인데 그 상태를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매사에 바른 길에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칫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도 한때는 다혈질로 사랑에 결핍된 사람이었습니다(눅9:54). 그래서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이 있었습니다(막3:17). 그러나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 사랑의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싸우는 원인도 서로 자기를 사랑해달라는 욕구 때문입니다. 사랑결핍증에 고통 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먼저 사랑의 씨앗을 뿌립시다. 아멘.
キリスト教の本質は愛です。主なる神様の属性も愛です。ですからキリスト教信仰を持っている私たちも愛で行うべきです。使徒ヨハネは本文で愛について教えています。彼が言う愛の教訓は何でしょうか。
第一、 愛することは古い命令でであり、新しい命令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7-8節)
使徒ヨハネの時代の信者たちも主に対して誤解があったようです。何の意味かと言いますと、旧約の主は裁きの主であり、新約の主は愛の主として認識することです。それで愛しなさいと言う命令が旧約時代にはなかったのに、新約時代になって新しく与えられたと考えていたように見えます。しかし、使徒ヨハネははっきり言います。「愛しなさい」と言う命令はすでに旧約時代にも存在したとのことです。それは全然新しいものではなく、律法に書いてあるものです。レビ記19:18には“復讐してはならない。あなたの国の人々を恨んではならない。あなたの隣人をあなた自身のように愛しなさい。わたしは主である。」といわれました。今日の私たちも同じです。主に対する信仰に誤解がないようにするべきです。主はいつも変わりなく、愛で行います(ヘブル13:9)。時々、私たちは懲らしめを受けると、主の愛を疑います。しかし、親が子を愛するから懲らしめるように主も私たちにそうします(ヘブル12:5-13)。そして、私たちも主の愛で昔も今も、そしてこれからも愛で行うべきです。
第二、 兄弟を憎む者は目が見えなく闇の中にいるようになると言うことです(9-11節)
8節を見ますと、「闇が消え去り、まことの光がすでに輝いている」と言われました。これは、イエス様が光としてこられたことです(マタイ4:16;ヨハネ1:9)。世は憎しみと恨み、争いと妬み、分裂とつぶやきなどで満たされて闇に包まれています。しかし、いくら世の闇の力が強くても、光なるイエス様の前では力を使うことができません。光となられたイエス様は私たちに私たちに互いに愛するように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そして、ご自分で愛の模範を見せてくださいました。イエス様は誰も憎みませんでした。ですから、私たちもイエス様のようにするべきです。もし、兄弟を憎む人がいればその人は、光、すなわちイエス様の人として見る事ができません。その人は闇の中で行い、目が見えなくて行く先も分からなくなります。何のことでしょうか。目が見えなくなること、すなわち、霊的な盲人になることですが、その状態を考えてみてください。それはすべてのことに正しく行えなくなることです。大きな事故を招くかも知りません。使徒ヨハネも以前愛に欠けていた人でした(ルカ9:54)。それで、「雷の子」と言うニックネームがあるほどでした(マルコ3:17)。しかし、イエス様に学んでから愛の人に変わりました。私たちもそう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人々が愛に飢えています。争う理由も互いに自分のことを愛してくれるようにねだっているからです。愛に飢えて苦しんでいるこの時代に私たちが愛の種を蒔きましょう。 アーメ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