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들 종교의 대부분의 가르침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종교에도 영원한 천국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다릅니다. 영원한 천국에 대한 분명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가 부활하여 죽어도 사는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바울도 그런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사는 것이기에 살고 죽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20).

 

사도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육신의 삶과 육신의 죽음 두 사이에 끼여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자기는 육신의 죽음을 택하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육체를 벗어버리고 영원한 천국에 가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살 소망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22-23). 일찍이 사도바울은 천국에 가서 말할 수 없는 놀라운 것들을 보고 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고후12:2-4). 그래서 그 하늘 소망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기까지 했습니다(20:22-24; 딤후4:7-8).

 

그런데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산다고 해서 땅에서의 삶을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의 자세를 통해서도 그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개인적으로의 소망은 세상을 떠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세상에 살게 하신 동안에는 그에 합당하게 살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24-26절의 말씀에 나타나있는 것처럼, 첫째는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를 이루는 것이요, 둘째는 성도들의 기쁨과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사도바울의 신앙을 통해서 배울 중요한 자세는 사즉아익, 생즉타익입니다. 그 말은 죽으면 내게 유익이 되지만 살아서는 타인에게 유익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즉아익, 사즉타익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즉 살아서 자기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죽어줘야 다른 사람의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즉아익, 생즉타익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고전10:24).

 

정말 진실하게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세상이 주지 못하는 세가지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죄 사함을 받은 것이고, 새 생명을 얻은 것이고, 영원한 천국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사도바울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은 안개라고 했습니다(4:14). 그러나 영혼의 생명은 영원입니다. 부디 안개처럼 사라질 인생을 사는 동안에 타인에게는 유익이 되고 죽어서는 그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을 누리는 축복된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この世には沢山の宗教があります。その宗教の教えはほとんど良いことです。しかし、どんな宗教にも永遠な天国に対する確かな約束は保証できません。でもキリスト教は違います。永遠な天国に対する確かな約束があります。それはイエス・キリストが復活されて、死んでも生きるいのちをくださったからです。今日の本文を見ますと、使徒パウロもそのような信仰告白をしています。彼は生きても生きることになり、死んでも生きることになるから死ぬのが何の問題にもならないと言っています(20節)。

 

使徒パウロの表現を用いると彼は肉体の死と生の間に板ばさみとなっ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ところがもしその中の一つを選ぶということになるならば、自分は肉体の死を選ぶといいました。その理由は何ですか。肉体から離れて永遠な天国へ行ってイエス・キリストと共に暮らす希望があまりにも良いからであります(22-23節)。かつて使徒パウロは天国へ行って人間には語ることのできない驚くべきもの見て、聞いたのでした(Ⅱコリント12:2-4)。それで、その希望を持って福音のためにいのちまで捨てることができました(使徒20:22-24;Ⅱテモテ4:7-8)。

 

ところで、一つ知るべきことは天に希望を置いて生きる人はこの世での生活をいい加減にしてもいいということではないという事実です。使徒パウロの姿勢を通して見てもそれを学ぶことができます。彼は個人的な希望は世を離れることではありますが、主がこの世に生かせてくださるときにはそれに相応しく生きるという姿勢を持っていました。それは24-26節のみことばに表われたように、1.聖徒たちの信仰の進歩をさせること。2.聖徒たちの喜びと誇りとなること。であります。これがどんなにすばらしいことでしょう。

 

使徒パウロの信仰を通して学ぶべきことは「死んだら自分の益、生きたら他人の益」です。ところが、その反対に「生きたら自分の益、死んだら他人の益」となる人も少なくありません。すなわち、生きては何でも自分のための益ばかりを求めて、他の人に被害を及ぼすようなことも平気にする人がいます。そのような人は死んでくれることで他の人の益になるのです。しかし、そのような人になっては悲しいことでしょう。私たちは「死んだら自分の益、生きたら他人の益」と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Ⅰコリント10:24)。

 

本当に真実な心で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ていますか。そうであるならば世がくれることのできない三つの特別な恵みを受けた人です。それは罪から許されたことと、新しい命を得たことと、永遠な天国を相続受ける人となったことです。ですから本当に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のであれば使徒パウロのような告白もできます。私たちの肉体の命を「霧」だと聖書はいいました(ヤコブ4:14)。しかし、霊的ないのちは永遠です。どうか霧のように消える人生を生きる間、他人に益になり、死んでからはイエス・キリストと一緒に永遠ないのちの祝福を受ける人生となりましょう。アーメ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