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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綾瀬東部教会

2020.12.06 コラム : 繰り返る歴史

歴史は繰り返されるという。本当にその通りである。過去の歴史が現在に、そして未来にも同じく繰り返される。その理由は簡単である。昔も今もこれからも人は変わらないからである。歴史が繰り返されるのは世界的、国家的、個人的にも同じように起こる。愚かな人は歴史を通じて学ばず、同じ失敗の道を歩む。旧約の予言書を見ると南のユダの国がそうだった。北のイスラエルが先に罪の故に滅んだのを見たが同じ道を歩み、そのために同じように滅んだ。賢明な人は歴史を見て学び、未来のために備える。そのために同じ失敗の道を歩まない。二千年のキリスト教の歴史の中で多くの迫害と流された夥しい殉教の血がある。それは今も繰り返されているし、未来にはさらに酷くなるだろう。

日本の地にも1612年禁教令が発令されてから1868年の明治維新までの約260年間厳しいキリスト教の迫害の歴史がある。覚えるべきことはその時期に迫害を受けた信徒たちの反応が大きく四つに分かれたことである。第一に、背教である。迫害を受けないために信仰を捨てて、さらには信徒たちを捕まえることに協力した裏切りである。第二に、逃亡である。人が住んでいない島や山奥などに逃げて身を隠して生活することである。第三に、潜伏である。うわべでは完全に仏教徒となっているような生活をしながら、裏ではキリスト教の信仰を守ろうとする偽装行為である。第四に、殉教である。死を覚悟して堂々と信仰を守りながら命まで捨てることである。もし、今日にも昔のようなキリスト教の迫害があると背教が一番多くて、その次が潜伏と逃亡、最後に殉教が一番少ないのではないだろうか。

ポストモダニズム時代と称される現代の代表的な特徴は相対主義である。それは「世の中に絶対的なものは絶対ない」と主張する。さらに「すべての禁じることを禁じろ」と叫ぶ。しかし聖書はそれとは反対である。主なる神様は絶対者として存在されて、信者として守るべき善と悪の確かな基準がある。それで、世の中と聖書は本質的に衝突し、世の中はキリスト者を嫌う。自分たちと違うからである。最近は思想と宗教や表現の自由までも圧制される雰囲気である。人権尊重や差別禁止という名分の包装紙に反キリスト教という中身を包んでいる法律まで作っている。共産社会主義国家の話ではない。キリスト教信仰の上に立てられたヨーロッパや北米がそのようになった。その波が世界的に広まってキリスト者に精神的、物理的な迫害を加えている。私たちの生前にキリスト教の迫害の歴史が繰り返るのを目撃するかもしれない。そのとき、自分は背教、逃亡、潜伏、殉教の中でどれを選ぶだろうか。魯牧師。


“반복되는 역사”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과거의 역사가 현재에 그리고 미래에도 반복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사람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반복은 세계적, 국가적, 개인적으로 동일하게 일어난다. 어리석은 사람은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못한다. 그래서 같은 실패의 길을 간다. 구약의 예언서들을 보면 남쪽 유다 나라가 그랬다. 북쪽 이스라엘이 먼저 죄로 인해 망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 길을 답습했다. 그로 인해 똑같이 망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역사를 보면서 배운다. 그리고 미래를 준비한다. 그로 인해 같은 실패의 길을 가지 않게 된다. 이천 년 기독교역사 속에 많은 박해와 엄청난 순교의 피가 있었다. 그런 일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고 미래에는 더 심해질 것이다.

일본땅에도 1612년 금교령이 선포된 이래 1868년의 명치유신까지 약260년간 극심한 기독교 박해의 역사가 있다. 기억할 것은 그 시기에 핍박을 당한 신자들이 크게 네 가지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첫째는 배교이다. 박해를 모면하고자 신앙을 버리고, 심지어는 믿는 자들을 잡아죽이는 일에 동참한 자들이다. 둘째는 도망이다. 외딴 섬이나 인적이 없는 깊은 산골 같은 곳으로 도망하여 은둔생활을 하는 것이다. 셋째는 잠복이다. 겉으로는 철저하게 이교도가 된 것 같은 생활을 하며 숨어서 기독교신앙을 지키려는 위장전술이다. 넷째는 순교이다. 죽음을 불사하고 당당하게 믿음을 지키다가 기어이 생명을 바치기까지 하는 것이다. 만약 옛날 같은 기독교 박해가 오늘날에 있다면 배교자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잠복자와 도망자 순이 되며 순교자는 가장 적을 것 같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라고 칭하는 현대의 대표적인 특징은 상대주의이다. 그것은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절대 없다”고 주장한다. 한발 더 나아가 “모든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고 외친다. 하지만 성경은 그와 반대이다. 하나님은 절대자로 존재하시고 신자가 지켜야 할 선과 악의 분명한 기준이 있다. 그래서 세상과 성경은 본질적으로 충돌하고 세상은 기독교인을 미워한다. 자기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은 사상과 종교나 표현의 자유마저 압제하는 분위기이다. 인권존중이나 차별금지라는 거창한 포장지에 반기독교라는 알맹이를 담은 법까지 제정하고 있다. 공산사회주의국가이야기가 아니다. 기독교 신앙 위에 세워진 유럽과 북미가 그렇게 되었다. 그 파도가 세계적으로 퍼지며 기독교인에게 정신적, 물리적 핍박을 가하고 있다. 우리 생전에 기독교박해의 역사가 반복됨을 목도할지 모른다. 그때에 나는 배교, 도망, 잠복, 순교 중에 과연 무엇을 택할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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