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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綾瀬東部教会

2020.05.31 コラム : 家族間距離

コロナ事態になってから一番よく聞く言葉が「社会的距離(ソーシャルディスタンス)」ではないだろうか。人を通じてウイルスが伝染するために可能な限り他人との空間的な距離を置いて過ごすよう促した言葉である。それで実際に人と人の間に空間が広くなったのだが、そこで発生した違う言葉が「ステイホーム」である。社会的な距離を置くためには最大限外出を避けて他人との接触をしないようにという主張である。会社員も在宅勤務をするのはもちろん、多くの人に対し、家にいるのが一番安全だと言い、家に留まるように注意をした。社会的な距離を置くことがステイホームを促し、ステイホームの増加が、家庭内暴力の増加に繋がったという話がある。家族が同じ空間で一緒に過ごす時間が増えるのには肯定的な面もあるが、否定的な面もある。


イエス様は「さらに、家族の者がその人の敵となります」と教えられた。すぐには理解が難しいみことばに見える。もちろん、そのみことばの文脈を見るとより深い霊的な教訓があるのがわかるが、文字通りにも的を得たみことばだといえる。日本では現在、三日に一人の妻が自分の夫によって殺されている。統計によると日本で起こっている殺人事件の中で親族間での殺人事件の比率が1999年41.8%だったのが2015年60%までに増えた。比較として最近ドイツで起こった親族殺人事件の比率は28.6%である。韓国も同じくらいである。そのような統計を見ると日本社会には、他人よりも家族や親族間の葛藤が著しく多く、憎しみが積もっていることがわかる。もちろんそれ以外に原因として推測できる面もあるだろう。


コロナウイルスの感染予防のためには社会的距離を維持することが必要である。同じように家庭の平和を維持するために家族間距離維持も求められる。社会的距離が空間的なものであるなら、家族間距離は心理的な次元である。わかりやすく言えば、他人に接するように家族に接する努力をすることである。私自身を見ても、他人に対しては我慢するが、家族にはあまり我慢しない。他人に対しては礼儀を守るが家族には無礼になることもある。他人には怒らないが家族にはよく怒る。その理由は他人には心理的な距離を置くが、家族にはそうしないからである。妻に「私を教会の信徒の一人のように接してほしい」と抗議を受けたことがある。家族間距離がないため互いに傷つけ合い、関係を壊すようになることが多い。そうならないためにも家族間距離維持が必要な時である。

魯牧師。


“가족간 거리두기”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일어나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닐까 싶다. 사람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염되기 때문에 가능한대로 타인과의 공간적 거리를 두고 지내라는 당부의 말이다. 그래서 실제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가 멀어졌다. 거기에서 파생된 또 다른 말이 “홈스테이”이다.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려니 최대한 외출을 삼가야 타인과의 접촉을 피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직장인도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에 있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며 집에 머물라는 당부의 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홈스테이로 이어졌는데 결과적으로 홈스테이가 가정폭력으로 나타난 비율이 높다고 한다. 평소보다 가족이 집이라는 한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음이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식구리라”고 가르쳐주셨다. 얼른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씀이다. 물론 그 말씀의 문맥을 살펴보면 보다 심오한 영적인 교훈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문자적으로도 맞는 말씀이다. 일본에서 현재 사흘에 한 명의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살해를 당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일본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 중의 친족간 살인사건 비율이 1999년 기준 41.8%였던 것이 2015년에는 60%로까지 증가했다. 비교로 최근 독일에서 일어난 친족살인사건비율은 28.6%이다. 한국도 그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 통계를 보면 일본사회가 유독 타인보다 가족이나 친족간의 갈등과 쌓인 원한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원인으로 짐작되는 면들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그처럼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가족간 거리두기도 요구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공간적인 것이라면 가족간 거리두기는 심리적인 차원이다. 쉽게 말하면 타인을 대하듯 가족을 대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우선 나 자신을 보아도 타인에게는 참지만 가족에게는 잘 참지 못한다. 타인에게는 예의를 지키지만 가족에게는 무례하게 대하기도 한다. 타인에게는 성내지 않지만 가족에게는 쉽게 성을 낸다. 그 이유는 타인에게는 심리적 거리를 두지만 가족에게는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아내가 “나를 교회 성도 한사람 대하듯이 대해주세요” 하고 항의를 한 적도 있다. 가족을 너무 가깝게만 여기다가 서로 상처를 주고 화목의 관계를 깨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자. 가족간 거리두기가 필요한 때이다.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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