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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綾瀬東部教会

2021.06.06 コラム : なぜ日本宣教なのかⅡ

韓国教会が日本宣教に力を尽くすべき更なる理由を見よう。それは過去に日本に負っている霊的な債務があるからだ。


債務とは第一に、日本が朝鮮の初期キリスト教の福音の拡張に与えた影響が大きい。1894年の日清戦争と1904年の日露戦争で日本が勝った。中国に仕えていた朝鮮は大きな衝撃を受けて、日本の植民地野望に対する警戒心が強まった。傍ら、非キリスト教国家である日本の横暴を止めてくれる国はキリスト教国家であるアメリカしかいないという認識が膨れ上がった。韓国キリスト教史を見ると日清戦争の後にキリスト教が急成長し、日露戦争の後には教会と信者の数が倍以上に増えたのがその一例である。結局、日本を止めようとした朝鮮の人々がアメリカには好意的であって、そのような雰囲気が朝鮮のキリスト教の急成長した時期と重なっているのである(引用:パク・ジョンシン「歪んだ解放の体制を超えて」)

第二に、韓国宣教初期の聖書翻訳の背景が日本である。朝鮮で日本に留学に行ったリ・スジョン(1842-1886)がイエス様を信じて1883年に韓国人として最初の洗礼を受けたクリスチャンとなった。彼は日本人の農学者津田仙を通じてイエス様を信じて日本の教会で日本人の牧師に洗礼を受けた。そして、1885年日本の教会で韓国語聖書翻訳を進めてマルコの福音を完成する。また、その聖書を横浜で印刷して日本を経て韓国宣教に行く宣教師たちに渡す。それが1885年のことであるが、韓国に派遣された最初の公式宣教師として知られているアペンジェーラとアンダーウッド宣教師である。ある国に最初に入国した宣教師がその国の言語で作られた聖書を持って入ったのは世界宣教の歴史の中で例のないことである。リ・スジョンはその後も日本に滞在している間新約聖書全体を次々と翻訳した。その聖書が韓国宣教の礎となったのである。

第三に、日本のプロテスタント教会の最初の宣教師の宣教地が韓国である。乗松雅休(1863-1921)牧師がその主人公である。彼は1896年に韓国の地に行ってスウォンを中心として宣教をし韓国全国に38か所の教会を立てた。言語、文化、経済的な困難も酷かったが、一番大きな障害は彼が日本人であることだった。彼は徹底して衣服も、飲食も、住宅も貧しい韓国人のように生活した。特に子どもたちには日本語ではなく、韓国語だけを教え話すように教育した。1908年には妻が病気で世を去って、1910年には朝鮮統合による植民地統治が強化されたが、彼は変わらず朝鮮の人々をキリストの愛で抱いた。そして、病気で息を引き取る瞬間までも朝鮮を心配し、朝鮮の地に骨を埋めてくれるように遺言を残した。乗松牧師夫妻は今もその遺言の通りにスウオンの同信教会に墓地に眠っている(引用:中村敏「日韓の架橋となったクリスチャン10人選」。彼も韓国の地に福音を伝えた先駆者である。


残念ながら韓国教会にはこの歴史があまり知られていない。私たちはこの事実を知って、日本宣教のを尽くすことで福音の債務を返すべきである。魯牧師。


“왜 일본선교인가? Ⅱ”

한국교회가 일본 선교를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본다. 그것은 일본에게 진 복음의 빚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 조선의 기독교선교초기 복음 확장에 일본이 끼친 영향이 크다. 1894년의 청일전쟁과 1904년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다. 중국을 종주국으로 섬기던 조선은 큰 충격을 받았고 일본의 식민지 야욕에 대한 경계심이 치솟았다. 반면 비기독교국가인 일본의 횡포를 억제해줄 나라는 기독교국가인 미국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한국기독교사를 보면 청일전쟁 후에 기독교가 급성장했고, 러일전쟁 후에는 교회당과 신자의 수가 배로 증가한 것이 그 한 보기이다. 결국 일본을 막아보려는 조선사람들이 미국의 기독교에 호의적이었고 그런 분위기가 조선에서 처음으로 기독교가 급상승곡선을 그리며 성장한 시기와 맞물려 있다(인용: 박정신 “뒤틀린 해방체제 그 너머”).

둘째, 한국선교 초기의 성경 번역 배경이 일본이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유학을 간 이수정(1842-1886)이 예수님을 믿고 1883년 한국인 최초의 세례 교인이 된다. 그는 일본인 농학자 츠다센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일본교회에서 일본인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1885년 일본의 교회에서 한국어 성경번역을 진행 마가복음을 완성한다. 또한 그 성경을 요코하마에서 인쇄하여 일본을 거쳐 한국선교를 떠나는 선교사에게 전달한다. 그것이 1885년의 일인데 한국에 파송된 최초의 공식선교사로 알려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이다. 어느 나라에 최초로 입국한 선교사가 그 나라 언어로 된 성경을 갖고 간 일은 세계선교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수정은 그후에도 일본에 머무는 동안 신약성경 전체를 차례대로 번역했다. 그로 인해 출간된 성경이 한국선교의 초석이 되었다.

셋째, 일본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의 선교지가 한국이다. 노리마츠 마샤야스(1863-1921)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1896년 한국땅에 가서 수원을 중심으로 선교하며 전국에 38개의 교회를 세웠다. 언어, 문화, 경제적 곤란도 심했지만 가장 큰 장애는 그가 일본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철저히 의복도 음식도 주택도 가난한 한국인처럼 살았다. 특히 자녀들에게 조차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만 가르치고 말하게 했다. 1908년에는 아내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1910년에는 일본의 조선합병으로 인한 식민지통치가 강화되었지만 그는 변함없이 조선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었다. 그리고 병으로 임종하는 순간까지 조선을 염려하며 조선땅에 뼈를 묻어달라 유언했다. 노리마츠목사부부는 지금 유언대로 수원의 동신교회의 묘에 함께 묻혀있다(인용: 나카무라사토시 “한일가교그리스도인10인선”). 그도 한국에 복음을 전한 선구자이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에 이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일본선교를 통해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할 것이다.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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